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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적 풍자, 新관계 맺기

정종구(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제고하고 성장시키기 위하여 상투적이지 않은 계기와 사건들의 경험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것이 예술로부터 연계된 것이라면 더욱 긴장감 있고 멋진 일이다. 예술은 오랜 시간동안 우리의 가치와 그 성찰에 관여해왔으며, 또 지금 우리에게는 예술 창작의 실천을 존중하고 지원하며 즐길 의사와 환경이 충분히 갖춰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세계에 관해 토해낸 작가의 반응과 제안들은 대체로 자유로운 의사표현에 의한 타인의 투명한 선택과 교류를 열망한다. 또한 이 제안 중에 일부는 사회적 교류를 통하여 가치 있고 공정한 과정에 의해 새로운 규범으로 역할하고, 다시 다음 단계의 여건으로서 설계되어, 이어지는 세계 확장에 기여하게 된다. 이것은 세계에 관한 작가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반응이 세계와 소통하려는 지점이다. 한편,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한 우리 자신의 태도들이 미래 세계의 형태와 성격을 결정짓는다고 신뢰할 수 있을 때, 사적인 가치에 대한 우리 자신의 언급과 선택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오픈스튜디오에서 선보이는 임은경 작가의 신중함은 사회적 사건들이 연결된 불평등에 대하여 느끼는 ‘부정’의 심리와 개인적 통쾌감의 공감 상태인 ‘관계’를 제안하면서 드러난다. 작가 자신이 어릴 시절부터 느꼈던 ‘불평등, 부조리, 부정’의 심리 상태에 주목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미 알려진 사건의 메시지에 관한 개인적인 부정적 심리 상태와 최근의 정치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면서 그 마음 상태에 놓인 가치들을 시각예술 작업의 메시지로 표현하는 것이다. 대학 재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신인작가로서 느꼈던 현실의 불편함에 대한 피로감이 작가 자신의 ‘지금, 이곳’을 다시 돌아보게 한 중요한 계기일 것이다. 그리고 물질과 현실적 욕망의 추구에 지쳐있음을 알면서도 표현하고 교류하지 못하는 다수 소심한 개인의 상태들을 작가가 예감하면서 신중한 선택과 실천이 시도된다. 이로써 작가는 자신이 겪는 사회적 현상들을 작업의 주제로 수용하고 적절한 심리적 반응들을 풍자적인 미술작업을 통하여 언급하게 된다.

 

최근에 제작된 “Strong man series”는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독재자의 얼굴과 썩은 사과의 단면 이미지를 꼴라쥬 형식으로 결합시킨 디지털 프린트 작업이다. 이 작업은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 마그리트의 1964년작 “son of man”을 참고하여, 모자를 쓴 신사 대신에 독재자를 배치하고 먹음직한 사과 대신에 ‘부정’의 표현으로서 썩은 사과 즉, ‘유기물이 부패 세균에 의하여 분해됨으로써 원래의 성질을 잃어 나쁜 냄새가 나고 형체가 뭉개지는 상태’의 사과를 보여주면서 ‘썩었다!’를 직설적이고 단순하게 표현한다. 작가는 이를 두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공감하는 통쾌감을 기대했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읽혀지는 “그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실제로 발매된 타임지의 표지를 구겨놓은 상태를 보여준다. 어떤 지지층에게는 영웅일 수 있는 ‘박근혜’, ‘김정일’ 등의 인물사진 표지에 대해 ‘구김살이 잡히거나 마음이 언짢게 되다’라는 부정적 감정을 별다른 여과 없이 시각적 표현으로 내뱉는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직설적인 풍자다. 이외에도 작가의 위트가 보이는 풍자적 작업은 다양하다. Newsweek잡지에 소개된 카다피의 얼굴을 물감으로 채색하여 웃음거리로 변형시킨 “조커? 카다피?” 작업과 진지한 회의장면을 보도하는 잡지 사진 위에 비키니 차림의 여성을 꼴라쥬하여 합성한 2012년작 “쉿!?”,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문화적으로 발전한 서울을 소개하는 방송화면에 등장하는 ‘서울은 지구상에 가장 활발한 도시 중 하나로’라는 문구와 멱살을 잡고 몸싸움을 하는 국회의원들의 사진을 결합한 2012년작 “서울은” 등은 부조리한 사회 현상들에 대한 ‘나는 네가 싫어!’의 직설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설명에서 또 다른 메시지보다는 처음 봤을 때 시각적으로 보이는 직접적인 돌직구 형식의 풍자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점은 작가가 시각예술을 선호하고 선택했던 이유일 것이다.

대중 매체를 통해 알려진 이미지나 메시지를 차용하고 합성하는 작업은 이전 작업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10년작 “새로운 스타벅스”와 “염탐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 “전쟁하는 세상”, 2011년 졸업작품전에 선보였던 “나만의 영웅만들기”, “지구를 지켜라! 우리가 간다”, “a no-go area: final warning”,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등에서도 이미 우리에게 알려진 이미지 또는 메시지와 이질적인 이미지의 결합을 통하여 작가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했었다.

 

우리시대 미술의 매력 중에 하나로서, 미술이 ‘소유’의 대상이기보다는 ‘관계’의 매개체로 중시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아마도 나와 우리를 성장시키는 소통과 삶, 그 주변 환경으로서 관계일 것이다. 관객의 지지와 다양한 반응의 관계를 통하여 작가는 공정한 합의에 이르고 싶어 한다. 작가는 사회적 이슈로 알려진 메시지와 이미지를 활용하여 ‘부정’이라는 주제로 작가 자신의 심리 상태를 투영하고 현대인들의 심리, 욕망을 탐구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또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내용의 역사나 정치, 사회, 문화 등 시사적인 보도에 대한 개인적인 이해들을 언급하면서 그 개별적 심리상태의 가치들을 이미지로 공유하고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반응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도출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존중한다. 즉,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롭게 부정을 표현하고 공감을 시도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일종의 ‘긍정적 조정과정’으로 정의하는 것 같다. 부정을 통하여 결여와 한정, 모순과 대립 등을 제고하면서 가치에 대한 감탄이 전달되고 확산되어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긍정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이고 밀도 있는 과정의 진행과 새로운 ‘관계’를 위한 선행조건, 즉 ‘나’가 있는가?, ‘나’를 지속시키고 있는가?, ‘나’를 개방할 수 있는가? 등에 관한 자기 점검이 필요하며, 작가는 스스로 이 부분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작가의 생각에 의하면 예술은 세상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통로라고 한다. 또한 세계를 바라보고 사회와 부조리를 투영하여 새롭게 반영하는 실천적 거울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오픈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지는 가치의 제안과 감탄이 진정으로 소통되고 공정한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사회적 현상의 언급에 관한 관객의 합의와 더불어 예술적 전율로서 가치에 대한 통쾌함의 반응을 기다리며, 앞으로의 진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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