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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환경과 시각적 서사, 예술의 ‘쓸모있는 가치’에 대한 물음

글 ● 최윤정 (미술비평·독립큐레이터

 

 임은경 작가는 창작의 문제에서 동시대 예술과 사회가 어떻게 소통하는지, 예술가로서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꾸준히 탐구해왔다. 그에게 회화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새로운 서사와 공동체의 자화상을 창출하는 표현이자 사회와 자신을 연결하는 과정이며, 대화와 공감을 시도하는 출구가 된다.

그의 작업들은 줄곧 기울어진 사회와 권위적인 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아내는데, 작가에게 이러한 장면들은 자각의 모티브로서 그가 처한 ‘환경’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거주하는 도시의 정치사회적 배경과 그로부터 부유하고 연속되는 사건들은 예술가로서 가치관과 신념, 사회적 역할에 대해 숙고하도록 작용할 수 있다. 보자면 수동적인 관조에 멈춰 서지 않고 자기 환경에 대한 탐구와 자각, 변화의 의지를 담은 그의 작품은 ‘대구’라는 콘텍스트에서 출발해 사회구조로, 세계로 확장되며 ‘쓸모있는 가치’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관철되어 왔다.

 그가 작업의 소재를 탐구하는 방식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에서 시작한다. 평소 작가의 성향은 말하기보다 듣는 것에 익숙하다. 신중한 한편,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공감하는 기질은 그의 작품에서 상황적 인식, 사회적 배경, 사건으로 드러나는 삶의 모습이 주로 나타나는 이유를 원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언론매체, 뉴스 등에서 접한 사건들을 통해 작업의 소재를 수집한다. 이에 대한 자극은 드로잉으로 재해석된 도상들로 표현되며, 작가는 이 도상들을 재편집하고 구성하여 그만의 시각적 서사를 구축한다.

 

 초기 작업은 분명 당대 정치와 인물, 사회에 대한 비판과 묘사를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재현한 형태들이 주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여러 회화적 실험을 거치면서 시각적 서사에 대해 보다 심도있게 접근하였던 <의도된 연출>(2016)을 살피자면, 이 작품은 일상적이고 정치적인 사건들을 나란히 배치하여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지를 다시 정의한다. ‘불’을 매개로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일상의 장면을 등가적으로 배치하여 새로운 시각적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흑백의 절제된 색감과 불의 색상 역시도 사건의 리얼리티와 일상의 양가성을 강조하며, 사회적 사건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방식으로 작품 자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작가는 보다 절제된 색감과 상징화된 도상들을 통해 드로잉 연작을 선보여 왔다. 장면구축을 중심으로 하였던 관찰자적 묘사로부터 사회와 자아와의 관계성을 보다 내밀화하고, ‘기울어진 사회’를 상징화한 드로잉 연작을 선보였는데, 이 시기 드로잉 작업으로 발표한 <기묘한 드로잉>(2017)은 팬데믹 시기에 개인전 <기묘한 드로잉>(2020)을 통해 설치작업으로 재구성되었다. 일상적 사물들과 폐기물 등을 푸른 실크천으로 덮은 이 작업은 보호와 보전을 목표로 우리의 삶과 실존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묵과되고 은폐되고, 도리어 아름답게 묘사되는 사회적 위선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상황에 대한 일종의 역설적 비유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이성과 위선, 그리고 원칙적 규범을 거부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에서 상황을 목도하게 하는 시각적 서사를 연출하였다.

 임금노동자를 돌멩이로 설정하고 이 주체들의 발화를 작품화한 <돌들의 발현>(2023)에서 작가는 돌멩이마다 선언문구로 새겨진 ‘고용승계, 임금체불 규탄, 인권, 비정규직 차별’을 통해 임금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사회적 연대의 목소리를 담은 장면을 시각화하였다. 돌멩이는 물리적으로 부서지고 변화하지만 그 의미와 발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돌멩이들이 서로를 지지하며 하나의 구조를 이루는 것처럼, 임금노동자들도 서로의 경험과 투쟁을 통해 강한 연대와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가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암시하며, 임금노동자들이 단순히 사회의 공통재로 취급되는 존재가 아니라 상호 연결된 공동체로서 지속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발언자이자 행동의 주체임을 상기하게 하는 작업이다.

가장 최근 작품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통은 현실이 된다>(2024)는 3개의 레이어가 겹쳐지는 화면구성으로 현실의 복잡한 이면을 실험하고 탐구한 작업이다. 이상적인 자연풍광을 배경으로 상단에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8)의 한 장면이 위치하고, 하단에는 2014년 진도 앞바다의 침몰하는 세월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플로리다의 어린이들의 일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환경이지만, 그 속에는 가난과 불안정한 삶이 숨어 있고, 이와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 역시 외부에서는 평온한 바다의 풍경이지만 그 이면에는 참혹한 현실이 숨어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세월호는 모두 겉으로 보이는 평화와 안정을 넘어서, 사회적 불평등과 시스템의 부재가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위협하는지를 보여준다. 플로리다의 가난한 지역사회와 세월호 사고는 현실의 고통과 불행이 겉보기와는 달리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함을 상기시키고 있으며 그 안에서 고통과 죽음이 어떻게 무시되거나 외면되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작가의 드로잉과 회화적 실험들은 여러 주제와 형식으로 구현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시각적 서사의 영역에서 화면구성의 변화와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시기별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창작 문맥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작가는 예술가로서 자신을 사회적 존재로 인식하며, 사회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지닌 예술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의 작업은 “나-그림-감상자-사회 바라보기”라는 단계적 구조를 통해 개인과 사유, 그리고 사회적 서사 간 관계성을 마주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우리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가 속한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 예술이 던지는 실존적 질문과 공감의 가치 그로부터 우리는 쓸모있는 가치를 제고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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