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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컬하게 혹은 가장 얌전하게 삐딱한

홍경한 (미술평론가)

 

 작가 임은경의 작업은 전반적으로 두 갈래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작가 자신의 심리성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작가의 시선에 맺힌 사회적-정치적 현상과 사건 등에 대한 비판적 관점의 투영이다. 그 중에서도 임은경 작가의 즉흥적인 드로잉은 그를 가장 빛나게 할뿐더러 심리적 상황을 효과적으로 반영한다. 회화적인 감각이 돋보이는데다가, 작가의 마음작용과 의식상태가 여타 작업 대비 올곧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특질은 이번 작가대전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일례로 <자화상>이라 명명된 그의 드로잉 연작은 작가 자신의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잡다한 생각들이 듬성듬성 똬리 튼 채 긴장과 이완을 오가며 현재를 소환하고 있다.

비록 <자화상>이라 이름을 붙였으나.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화상(특정인을 투사한 얼굴)이 아님을 알 수 있듯, 그의 자화상은 감정으로 읽는 자화상, 시대성을 포괄하는 자화상에 가깝다. 때문에 작가 또한 이를 “그것들이 곧 나이기에 작업 앞에 <자화상>이라 이름 붙인다.”고 말한다. 현상과 대상을 자신과 등치를 이루는 것으로서의 자화상인 셈이다.

2015년 작품 <도망>, <손짓> 역시 같은 범주에 든다. 행동심리학에서 손과 발은 심리표현의 1차 신호로 간주된다. 반대로 손이 설명하거나 강조하기를 중단하는 것은 대게 뇌 활동이 변했음을 알려주는 단서다. 뇌 현상학에서 가시적 감정의 전달은 손을 통해, 구체적 실천은 발로 이뤄진다는 주장을 근거로 할 때, 단지 발만 묘사된 <도망>은 어떤 단안(斷案) 이후 행동으로 옮기는 찰나를 보여주며 <손짓> 손은 심리성을 대리하는 기호의 역할을 한다. 이 두 신체적 조합은 그야말로 사실, 현실, 실행 이라는 세 가지를 함유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리의 우회가 두드러지는 작품 외에도 임은경의 작업에는 비판의식이 서려 있다. 일단 그가 2013년 제작한 잡지 꼴라주 작업인 <가족사진>이나, 문명과 건설-전쟁과 평화-풍요로움과 빈곤-자유와 억압 등의 시대적 의제들이 역설적으로 관통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2013) 연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한국의 아방가르드 선구자라 불리는 김구림 작가의 전시 주제이기도 했다.), 상처 입은 아이(혹은 사망한 아이)를 안은 채 서글프게 흐느끼고 있는 <피에타>(2013)등의 작품을 보면 그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비판성을 전제로 휴머니티가 함의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을 신나치즘 혹은 신독재성을 다룬 <다섯의 히틀러(Five Hitler)>(2013)에서도 재 구현 된다. <다섯의 히틀러(Five Hitler)>는 히틀러를 중심으로 전두환, 이명박, 노태우, 박정희 전 대통령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가운데 흑백 모니터에선 히틀러로 분장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가 상영되는 다원주의적 작품이다. 벽에 내걸린 5명의 인물 모두 히틀러의 트레이드마크인 짧고 진한 콧수염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작품은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연설장면이 송출되는 화면에 각각 실제 똥파리 한 마리를 얹은 <똥파리>(2015) 연작처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의미로 제작, 풍자하려한 것인지 쉽게 파악된다.

흥미로운 건 임은경의 경우 심리적인 문제와 비판적 견해를 일상 속 관계에서도 묻곤 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종이에 연필로 탁자를 그린 <자화상>(2015)은 25x36cm에 불과한 작은 작은 그림이지만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관계성이 잘 묻어나고 있다. 이 작업은 바탕에는 험담을 키워드로 한 인간내면의 힘과 권력, 권위에 대한 강한 집착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이는 일종의 정보세력에 대한 이야기에 준한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의 작가노트에 “책상의 앞 뒤 면에 나의 눈, 귀, 잎, 코들이 마치 누군가의 이야기를 엿듣고 상황을 표현하고 있으며, 마지막엔 연필 한 자루가 불안하게 놓여있다. 이 불안한 연필 한 자루는 나의 상태를 말해주며 동시에 누군가를 험담을 하든 종은 이야기를 하든 곧 기울어 떨어질 연필처럼 말하는 자와 그 대상자들의 불안한 상태 그리고 그 대화들은 아무런 의미 없는 대화라는 것이다.”이라고 적고 있다.

이처럼 임은경의 작업은 비판적이지만 휴머니즘이 전제되어 있고 외피에 대한 서술보단 심리와 감정에 천착하고 있다. 거개의 작품에서 우리가 무엇을 자각해야 하는지, 우리가 걷는 이 길이 과연 올바른 길인지 되묻는 자신만의 발언과 의제가 드러나고 사회, 정치적인 내용에서부터 흔하게 겪는 일상에서조차 그 알고리즘을 찾아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텍스만으로 구성된 <정색하면 스스로 옹졸해지니까>(2015)은 그 중에서도 발언과 환경의 불완전한 상호성에 무게를 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임은경은 자신의 작가노트에 이 작품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나의 가족들을 비롯해 친한 친구들 그리고 같이 작업하는 작가들도 나의 포트폴리오나 작업을 보고 어떤 건 좀 유치하다, 좀 직접적이면서 너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다. 위험하지 않나, 보기 좀 그렇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중략...그냥 너무 정색하지 말고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소심한 내가 전시라는 목적을 빌미로 말 못한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예술가는 표현의 자유를 통해 시대를 표상한다. 현실에 대한 부정적, 비판적 태도에 기인하여 성립되는 풍자를 비롯해, 조롱, 사실주의적 행태로 발언하고 그 주제의 범위는 제한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앞의 현실은 발언에 앞서 환경이 우선시 되고, 표현의 자유는 곧잘 정치-사회-인식의 끝자리에서 간신히 머물곤 한다. 임은경은 이러한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여건에 대해 “정색하지 말라”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더욱 확정적이지 못한 스스로에게도 옹졸해진/옹졸하지 말하는 주문은 왼다. 따라서 <정색하면 스스로 옹졸해지니까>은 발언의 자유 대신 자리 잡은 시대의 허망한 언어유희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세태와 더불어 현실의 삶에 의해 감춰지거나 배제되는 필연적인 이탈의 문제의식을 가리킨다. 하나 같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작업들이다.

한편 심사위원장으로 줄곧 함께 한 필자가 이번 작가대전을 통해 임은경 작업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는 철저히 혼자 작업해야 하는 스타일하는 것이었다. 공동미션이라든가 서바이벌은 그에게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히는 것과 같다는 여운이 켰다. 임은경은 자신이 느끼고 공유하며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사물과 현상을 자기언어로 표출하는것/표출하기 위해 무언가를 가다듬는 것에 익숙하지, 과제처럼 주어지는 상황은 되레 어색함과 엉성한 결과물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사고와 가치관을 말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생각은 많으나 구두로 다뤄지는 것에 대한 어색함이 크다.

이는 작가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교정이나 수정이 불가능하다. 강요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예술경로가 완만하게 이뤄지길 바란다면 일단 시니컬하게 혹은 가장 얌전하게 삐딱한 그의 스타일대로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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